Life Story

독충과 함께 시작한 하루

슈라。 2020. 5. 4. 09:05

  앗! 따가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무언가가 팔을 찢는 듯한 강한 고통에 잠이 깼습니다. 

거실로 나와 팔을 보니 무언가에 물린 듯 살짝 부어 있었고 매우 아팠습니다.

 

시골에 있는 부모님 집은 말벌이 수시로 들어오는 집입니다. 아마도 또 벌이 들어와서 쏘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때 자기 전에 들었던 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스슥 스슥. 또 벌이 들어왔구나 싶어서 휴대폰의 라이트를 켜서 천장을 살피다가 찾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같은 방에 아들 둘이 자고 있어서 얼른 말벌을 찾어 치워 버릴 생각에 덮고 자던 이불을 안고 나와 털었습니다.

 

 

그런데...(징그러움 주의)

이불에서 툭 떨어져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 다리 많은 녀석. 지네였습니다. 너무 놀라서 준비해 둔 파리채로 대여섯 번 후려 치니 잠시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말벌 못지 않게 시골집에 자주 출현하는 지네. 벌써 어머니와 아내 제수씨가 한 번 씩 물렸었는데 제가 그다음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두 아이가 물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시간도 이른 새벽이고 해서 예전에 알아본 치료 법대로 우선 팔을 찬물과 비누로 몇 번 씻어 줬습니다.

그리고 냉찜질을 해 줘야 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너무 화가 나더군요. 아내를 쉬게 하려고 아이 둘만 데리고 시골집에 와서 피곤한데 잠을 일찍, 그것도 엄청난 고통을 주면서 깨운 이 놈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촌놈 기질이 되살아나서 복수를 하기로 했습니다.

 

 

나무젓가락을 하나 까서 지네를 잡아가지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그냥 밖에 놔 주라는 아버지 말씀을 뒤로하고 부탄가스와 가스 토치를 챙겼습니다.

 

 

괘씸한 녀석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며 복수를 했습니다. 신나게 지져 주는데 펑하더니 지네 몸에서 뭔가가 터져서 얼굴을 맞았습니다. 그냥 놔주라는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고 미물을 괴롭히다가 마지막까지 한 방 먹었네요. 잔인하긴 했지만 일단 속은 조금 풀렸습니다.

 

 

화형식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 팔을 보니 붉은 기운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습니다. 아직 간헐적으로 욱신욱신 통증도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가려워지겠죠.

 

온열팩을 준비했습니다. 지네 독은 산성이기도 하고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비눗물로 잘 씻은 다음에 부기를 가라 앉히기 위해 냉찜질을 했어야 했는데 복수를 하느라 시간을 지체해 버려서 바로 고온으로 찜질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지네 독은 열에 약하다고 합니다.

 

30분 정도 뜨끈하게 팔을 지져 줬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아직 5시 30분... 다시 이불을 가지고 아이들 옆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8시쯤 다시 일어나서 팔을 보니

지네에 물린 자국만 점 두 개로 남아 있고 넓게 번졌던 벌건 기운은 사라졌습니다. 물린 부위를 손으로 누를 때 살짝 통증이 있는 것 말고는 심한 통증이나 가려움증은 없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보니 다리를 잃은 앙상한 지네 몸뚱이만 남아 있습니다. 곧 마당의 개미들이 분해해서 가져가겠죠.

 

 

지네에 물렸을 때는 민간요법이라고 이것저것 가져다 바르는 것보다 비누를 이용해서 깨끗이 씻어주고 냉찜질이 가능하다면 물린 부위를 차갑게 해 주어 부기와 통증을 줄여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부기가 가라앉고 나면 온찜질을 해 주는 것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네 독은 치명적일 정도록 독하진 않지만 물린 부위에 따라 통증이나 증상이 다를 수 있고 특히 알레르기(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 심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증상을 잘 살펴보고 119에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거나 얼른 병원을 찾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에 시골집에 가면 지네가 들어오는 곳으로 의심되는 창문 샤시의 모든 물구멍을 막아야겠습니다.